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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숨결에서 깨어난 자들 ]



| "The course o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 - William Shakespeare


세상이 처음 숨을 쉬기 시작한 그날, 하늘 위에서는 여섯 신이 운명의 실을 짜고 있었다.

금실로는 지성을, 은실로는 본능을 엮어내며 아래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힘을, 짐승에게는 살아가는 직감을.

하지만 현무강 깊은 곳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제7의 신, 현무는 고개를 저었다. 거대한 거북의 등 위에 뱀이 감긴 그의 형상이 강물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균형이라고 하지만, 결국 반쪽짜리 존재들만 만들어내는군."

현무의 목소리가 강물을 통해 울려 퍼졌다. 물고기들이 깜짝 놀라 도망갔고, 수초들이 물결을 따라 흔들렸다. 그는 긴 목을 들어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물결에 부서져 은가루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지성만 가진 인간은 감각을 잃고, 본능만 가진 짐승은 사유를 포기한다. 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가. 만약 둘 다 가진 존재가 있다면..."

현무는 깊이 잠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강 전체를 진동시켰다. 파도가 일고, 소용돌이가 생겼다. 현무강의 모든 생명이 그 부름에 귀를 기울였다.

현무의 부름이 강물 깊숙이 울려 퍼지자,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것은 회색늑대였다.

물속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떠오르는 그 모습은 마치 달빛이 물에 스며든 것 같았다. 은은한 회색 털 하나하나가 물결에 흔들렸지만, 그는 물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었다. 크고 둥근 눈동자가 현무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신중했고, 귀는 예민하게 세워져 모든 소리를 포착하고 있었다.

"너는 하견(霞絹)이다."

현무가 부드럽게 말했다. 늑대의 눈빛이 깊어졌다.

"안개처럼 은은하지만 비단처럼 질긴 자.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감시하는 수호자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물결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백여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백의 털이 물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났다. 날렬한 주둥이와 영리한 눈빛, 그리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몸짓. 물을 가르는 그의 모습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꼬리가 물결을 따라 흩날리며, 마치 물 자체와 하나가 된 듯했다.

"너는 운소(芸素)이다."

현무의 목소리에 여우의 귀가 쫑긋 섰다.

"예술 같은 솜씨와 소박한 진실을 지닌 자. 한 마디 말로 마음을 사로잡고, 미소 하나로 세상을 바꾸는 설계자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나타난 흑호는 달랐다.

물속 어둠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은 위압적이었다. 검은 털 위에 깊은 줄무늬가 물결에 따라 일렁였다. 근육질의 몸이 물을 가르며 다가오는 모습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현무를 똑바로 응시했다.

"너는 현람(玄嵐)이다."

현무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어둠의 바람과 같은 자. 말보다는 행동으로, 망설임보다는 결단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수호자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황금빛 물결을 일으키며 사자가 나타났다.

웅장한 갈기가 물속에서도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흩날렸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곧은 자세,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왕의 품격이 온몸에서 흘러나왔다.

"너는 진유(眞儒)이다."

현무의 마지막 말에 사자가 위엄 있게 머리를 숙였다.

"진실한 유학자와 같은 자. 질서를 통해 혼란을 다스리고, 판단을 통해 정의를 세우는 설계자가 될 것이다."

네 존재가 현무 앞에 일렬로 섰다.
각각이 서로 다른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모두 현무를 향한 존경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너희는 지상에서 가장 예리한 감각을 가진 자들이다."

현무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 너희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을 주겠다."

현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섯 신이 여전히 실을 짜고 있었다. 인간들의 마을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숲속에서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무는 알고 있었다. 이 균형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지성과 감각. 둘 다 가진 존재가 태어나야 한다."

현무의 앞발이 물속에서 번쩍였다. 순간, 현무강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발톱 끝에서 네 개의 빛나는 구슬이 나타났다. 각각 은색, 흰색, 검은색, 황금색으로 빛나는 구슬들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심장이다. 가장 순수한 감정과 지성이 담긴."

구슬들이 천천히 네 짐승의 이마로 날아갔다. 닿는 순간, 강 전체가 진동했다.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빛의 기둥이 수면을 뚫고 하늘까지 솟았다. 그 빛은 너무 강해서 여섯 신도 작업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볼 정도였다.

하견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네 발이 두 다리로 바뀌었고, 앞발이 손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감각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운소도, 현람도, 진유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형상을 얻었지만, 짐승의 본능과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다.

"이제 너희는 생각할 수 있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현무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지성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감각으로 진실을 파악하라. 그리고 너희 후손들은 각각의 가문을 이루어 이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다."

네 존재가 현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른 깊이가 있었다. 단순한 본능이 아닌, 복잡한 감정과 사고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현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 존재에게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존재는 언젠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현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에게는 하나의 운명이 주어질 것이다."

네 존재가 고개를 들었다. 현무의 목소리에서 슬픔 같은 것이 묻어났다.

"너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 너희는 그 존재에게 완전히 속하게 될 것이다. 지성도, 감각도, 모든 것이 그 하나의 존재를 향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너희를 가장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약하게도 만들 것이다."

현무강이 조용해졌다. 물결 소리도 멈춘 것 같았다. 네 존재의 얼굴에 당황과 두려움이 스쳤다.

"이것이 각인이다."

현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희 운명의 매듭.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사랑하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게 되는 존재. 그 사랑하는 이의 손목에는 너희 가문의 문양이 새겨질 것이며, 너희는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오직 그 존재만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저주다."

그날 이후 이들은 수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무강에서 나와 땅으로 올라간 그들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낮에는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밤에는 본능으로 진실을 느끼며.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현무의 마지막 말이 남아있었다.



"현무의 마지막 선물"이라 불리는 각인. 보수파들은 이를 "현무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사랑에 빠진 수인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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