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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  백현우



[ 바닥 ]

Delta://Back Hyun-woo

 
새벽 네 시, 고시원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닫고 목을 한 번 젖혔다. 척추가 뚝뚝 소리를 냈다. 열여섯 살이었지만 이미 목과 어깨는 마흔 살쯤 되어 있었다.

편의점까지는 계단을 내려가 왼쪽으로 꺾어 50미터쯤 걸으면 됐다. 나는 그 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커피를 샀다. 드립백 커피. 900원짜리. 물만 부으면 되는 것.

편의점 알바생은 나를 알아봤다. 고개를 까딱했다. 나도 고개를 까딱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은 대부분의 경우 불필요한 소음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꺼내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누군가 급전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혼 소송 중이고, 아이 양육권 문제로 변호사 선임비가 필요한데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글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했다.

고시원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면서 그 사람의 계정을 뒤졌다. 3년 치 게시물. 댓글. 좋아요 목록. 모든 것이 데이터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흘리고 다니는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계속 흘린다. 그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두 시간 후, 나는 그 사람의 직장, 연봉, 부채 규모, 신용등급을 파악했다. 어렵지 않았다. 공개된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퍼즐 조각을 스스로 인터넷에 뿌려놓는다. 나는 그저 그걸 주워 맞출 뿐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실제로 필요한 돈이 얼마냐는 것이었다. 변호사 선임비라고 했지만, 게시물에 언급된 변호사 사무실을 검색해보니 그 정도 사건이라면 통상 500만 원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1,500만 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차액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식어빠진 커피는 쓰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쓴맛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채업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내가 보낸 정보를 확인하고 이틀 뒤 답을 줬다.

"쓸 만하네. 이번엔 얼마 떼줄까?"

"30만 원이면 됩니다."

"쪼잔하게. 50 줄게."

"30이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축축하고 무거웠다. 나는 그 공기 속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열여섯 살이 피우는 담배. 불법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30만 원으로 나는 아버지의 이번 달 고물상 적자를 메웠다. 아버지는 내가 어디서 돈을 구했는지 묻지 않았다. 나 역시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다시 편의점에 갔다. 같은 커피를 샀다. 같은 자리에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커피가 우러나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지금쯤 사채업자에게 연락을 받았을 것이다. 1,500만 원 대출 가능하다는. 금리는 높지만 어쩔 수 없다는. 그는 고민할 것이다. 하루쯤. 이틀쯤. 그러다 결국 손을 내밀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그런 구조였다. 누군가는 빚을 지고, 누군가는 그 빚을 이용해 돈을 번다. 나는 그저 그 구조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을 뿐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 외곽이라고 해도 도시의 불빛은 밤하늘을 지웠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별 같은 건 애초에 필요 없었다. 중요한 건 발밑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고 걸어갈 바닥.




List :  백현우

© 2025 Void Index. All rights reserved.델타인베스트는 기계님의 허락을 받고 세계관을 참고하여 영감을 받아 제작한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