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Notice
A.N.W.
Delta
YMY
A3
etc.
tistory
Man is nothing else but
what he makes of himself
[ 두 개의 얼굴 ]
Yeomyung://Shin Yul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 Nietzsche
##1
여덟 살 아이의 운동화에서 마른 흙가루가 현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는 품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고양이의 회색 털은 피와 엉겨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가쁜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아이는 고양이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손가락 끝으로만 조심스럽게 몸통을 받치고 있었다.
“엄마, 얘가 다쳤어.”
어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짚었다. 옷 위로 축축한 냉기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신문을 내려놓았다. 활자들이 빼곡한 종이가 반으로 접히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아빠가 전화해 볼게.”
동물병원의 수술대는 차가운 스테인리스였다.
수의사가 고양이의 상처를 소독하는 동안, 아이는 문밖에서 하얀 벽만 바라보았다.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구겨진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든 자신의 저금통을 꼭 껴안고 있었다.
수의사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2
중학교 복도는 점심시간의 소음으로 웅웅거렸다. 키가 작은 아이, 박민수가 급식판을 들고 걸었다.
누군가 고의로 발을 걸었다. 밥과 반찬이 바닥에 쏟아졌다. 아이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박더듬, 또 더듬네.”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신율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쏟아진 음식을 내려다보는 박민수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웃고 있는 아이들을 차례로 쳐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신율의 책가방이 사라지거나 교과서에 낙서가 그려졌다. 점심시간이면 그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쇠 숟가락이 식판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복도를 지날 때면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이 따라붙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텔레비전이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검은 화면에 아버지의 희미한 실루엣이 비쳤다.
“아빠, 왜 착한 사람이 손해를 봐야 해?”
아버지는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다. 거실 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렸다. 똑, 딱.
“세상이 공정하지 않아서 그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그럼 어떡해?”
“더 똑똑해지는 거야. 네가 지키고 싶은 걸 지킬 수 있을 만큼.”
##3
고등학교 3학년 봄이었다. 아버지가 담당한 성폭력 사건의 판결 날이었다.
가해자는 재력 있는 기업인이었고, 피해자는 같은 학교 후배였다.
아버지의 양복에서 처음으로 낯선 술 냄새가 났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채 식탁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평소 반듯하던 어깨가 무너져 있었다.
“무죄야.”
그의 목소리가 마른 종이처럼 갈라졌다.
“증거가 부족하다더라. 상대 변호사가 모든 걸 뒤집었어.”
그는 빈 유리잔을 손안에서 굴렸다. 얼음은 이미 다 녹아 없었다.
며칠 뒤, 저녁 뉴스에서 학교 후배의 소식이 흘러나왔다. 앵커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짧은 문장을 읽었다.
아버지는 그날 밤에도 술을 마셨다. 새로 채운 유리잔에 담긴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그는 창밖의 어둠을 보고 있었다.
신율을 보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허공에 대고 하는 말 같았다.
“세상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아버지가 쥔 유리잔에 비친 거실 조명이 길게 일그러졌다. 신율은 그 일그러진 빛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4
대학 강의실, 교수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신율 학생, 이번엔 가해자 측 변호사를 맡아보세요.”
그는 잠시 망설였다. 손에 든 펜이 멈췄다.
“저는… 피해자 측을 하고 싶습니다.”
“변호사는 선악을 가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뢰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람이죠.”
교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마지못해 가해자 측 서류 뭉치를 넘겨받았다.
두꺼운 종이 뭉치가 손안에서 묵직했다. 피해자의 진술서 위로 그는 붉은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미세한 균열을 찾아냈다.
모의재판이 열린 강의실은 난방이 꺼진 것처럼 공기가 서늘했다.
“피해자의 증언은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마이크 없이도 공간을 채웠다. 건조하고 평탄했다. 맞은편에 앉은 학생들이 그를 쳐다봤다.
그는 그 시선들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서류의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논리가 단단해질수록, 상대편의 표정은 흐려졌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척추가 꼿꼿이 서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똑같은 얼굴이었다.
##5
하버드 로스쿨.
신율은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너무 뛰어난 성적으로 정식 입학하게 되었다. 여전히 평상시에는 따뜻하고 친절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클리닉 프로그램에서 실제 사건을 맡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성폭력 가해자의 변호를 맡게 된 것이었다. 명백한 유죄 사건이었다. 증거도 충분했고, 피해자의 증언도 일관되었다.
하버드 도서관의 공기는 건조했다. 그는 실제 성폭력 사건의 기록을 넘기고 있었다.
피해자의 진술서에서 병원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서류를 뒤집어 책상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이런 사람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지도 교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해자에게는 변호받을 권리가 없나요?”
재판 전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증언대에 앉아 울고 있는 피해자를 보았다. 그는 여자의 눈물이 아니라, 배심원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고 있었다.
여자의 고통이 아니라, 증언의 허점을 찾고 있었다.
반대신문이 시작되었다.
“사건 당일 술을 얼마나 마셨습니까?”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질문은 날카로웠다.
“기억이… 잘….”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시는데, 다른 상황은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십니까?”
그는 계속 질문했다. 여자의 기억을 조각냈다.
“첫 번째 진술에서는 가해자가 파란색 셔츠를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진술에서는 검은색 셔츠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여자의 울음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재판장이 짧게 휴정을 선언했다. 그는 자리로 돌아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날 밤 기숙사 화장실에서 그는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했다. 위액이 식도를 넘어왔다. 차가운 타일에 이마를 기댔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가 화장실 전체에 울렸다.
##6
한국으로 돌아와 들어간 대형 로펌의 사무실은 도시의 불빛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에 있었다.
그는 아침에 유기견 보호소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기 후원금을 이체했다.
점심에는 의뢰인인 대기업 임원과 마주 앉아 산업재해 피해자들과의 합의금 액수를 조정했다. 피해자 목록에는 사망자의 이름도 있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서류를 검토했다.
저녁에는 사무실을 나와 편의점 앞에서 김밥을 사 먹는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드릴까요?”
그는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7
법무법인 여명을 설립할 때, 신율은 진심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다.
어느 날 젊은 후배 변호사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저희가 하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일까요?”
그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후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물론이지. 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의뢰인의 권리를 지키는 거야. 그게 변호사의 의무고.”
후배가 말했다.
“그런데 가끔… 형이 업무 할 때 보면 무서워요.”
“그래? 나는 똑같은 것 같은데?”
그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컴퓨터 전원을 끄자 검은 화면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온화한 미소를 띤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List : 신율